애국주의 거품 뺀, 나로호 3차 발사 감상법
» 2010년 6월10일 오후 17시1분 전남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2차 나로호가 발사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2010)
로켓의 시험발사란 개발 중인 시제품의 기능을 시험하고자 발사해 보는 것이다. 나로호의 1, 2, 3차 발사는 실용발사가 아니라 ‘시험발사’이므로 몇 차례의 발사 실패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시험발사가 연속 3차례 이상 성공하면 상용로켓으로서 실용단계에 왔다고 인정받게 된다.
그런데도 내부 행사로 그칠 시험발사를 실용발사인 것처럼 외부에 공개하여 축제처럼 만드는 것은 우주사업의 전시효과 때문이다. 나로호 사업단장이 발표할 사항을 장·차관이 텔레비전에 나와 호들갑을 떠는 일은 보기 드믄 광경이다. 연구를 하다 보면 실패는 흔히 있는 일인데도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가슴을 조이게 만드는 것은 한편으로는 연구원들이 스스로 만든 족쇄라 할 수도 있다. 나로호 3차 발사도 시험발사에 속한다.
나로호 개발사업이 걸어온 길
2000년 러시아가 액체 로켓 엔진 기술을 우리나라에 이전해 주기로 합의했는데,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미국·일본 양국이 한·러 간의 로켓 기술 이전에 대해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1970년대부터 사용해 오던 군용 1단 액체로켓을 상용으로 공동 개조하고, 한국은 독자 노력으로 2단 고체로켓과 페어링을 자체 개발하여 1단에 연결하며, 러시아 발사 기술로 나로도에 발사장을 만들어 최종 발사체를 발사한다는 것이 나로호 개발사업의 목표였다. 나로호는 전체 발사체의 명칭이지만 나로호 1단 로켓의 명칭은 앙가라다.
한러 두 나라의 나로호(앙가라) 공동개발 사업은 애초에는 큰 기대를 가지고 요행히 출발했는데, 곧이어 러시아 정부의 끈질긴 요구로 ‘양국 공동개발 계약’이 ‘시제품 조립구매 계약’으로 바뀌었다. 개발 완료 이후 나로호 1단 로켓을 우리 기업체가 국내에서 조립해서 사용하기로 한 계약이, 러시아가 앙가라 시제품을 2개 만들어 한국에 제공하는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기술 이전이 금지되자 우주발사체 기술을 축적한다는 목표가 사라진 나로호 개발사업은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3년 안에 개발을 완료하여 2004년에 실시하기로 한 1차 시험발사가 7년이 지난 2009년에 겨우 실시되었고, 그것도 러시아인들이 주관하는 행사에 우리 국민이 열광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나로호 1단 앙가라 로켓의 R-191 엔진은 수직으로 190 킬로미터를 상승하는 추력을 내므로, 수평으로 가면 1500~2000 킬로미터 사거리에 해당한다. 한미 미사일협정에 위배되는 사거리다. 북한이 주장하듯이 평화 목적의 통신위성 발사는 MTCR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으나, 로켓 엔진은 평화용이나 군용이나 동일하기 때문에 대상이 될 수 있다. 5000억 원이 들어간 나로호 사업이 실패한 원인은, 로켓엔진 기술 확보를 자체 노력보다는 선진국 기술 이전을 통해 단기간에 해결하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다. 국제 우주전문 변호사들의 의견을 들었더라면 아마 한러 공동개발 계약은 체결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로호 ‘우리 발사체’라 말할 수 있나
나로호 사업은 기술 외적인 문제도 야기했다. 정부가 나노호 사업의 성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숨긴 점이다. 1, 2차 시험발사 때 러시아 소유의 앙가라 로켓을 ‘한국 최초의 발사체’, 또는 ‘우리 우주로켓 나로호’라 소개하는 촌극을 벌였다. R-191 액체엔진은 1970년대에 실용화된 것이고, 한러 나로호(앙가라) 공동개발 계획이 무산된 경위는 해외 언론에 익히 알려진 사안인데도 우리 정부는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한겨레신문사와 2011년 4월12일 <한국방송> 기획보도로, 많은 국민이 나로호 사업의 허상을 알게 되었다. 정부는 3차 시험발사 이전에 나로호의 진실을 국민에 밝히고, 1, 2차 시험발사에서 국민을 기만한 부분은 사과해야 한다. 애초에는 나로호가 자체 개발된 우리 로켓이라 공언하던 정부가, 요즘에는 1단이 러시아에서 제작되었다고 슬그머니 말을 바꾸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이다. 아직도 일부 방송은 ‘우리 발사체’라 하고 있다.
MTRC 위반 논란으로, 2006년 한러 공동개발 계약이 파기되자, 러시아는 앙가라 로켓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한러 우주기술 보호협약의 체결을 요구하였다. 올해 초 시끄러웠던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약과 유사한 협약이다. 이 협약에 의해 앙가라 시제품이 김해공항 도착부터 나로도 발사장에 반입될 때마다 러시아 보안요원 수백 명이 기술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감시, 동행하는 것은, 기술개발 사업 차원을 넘어 주권문제라 할 수 있다.
한국이 개발하고 있는 2단 고체로켓과 페어링을 제외하고, 러시아 소유 1단 로켓, 발사 시험 설비, 지상관제 소프트웨어 기술이 한러 우주기술 보호협약에 의해 철저히 통제, 보호되고 접촉이 차단되어 있다. 러시아 요원이 평시에도 나로도 발사장의 일부 시설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설령 어께 너머로 체득한 기술도 러시아 지적 재산으로 보호된다. 상식에 속하는 자료까지도 러시아가 과잉 보호하게 된 것은 MTCR 회원국의 요구가 강화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1, 2, 3차 시험발사는 이와 같이 러시아가 자국 로켓 시제품을 우리 발사장에 들고 와서 시험하는 것이며, 한국은 2단계 고체로켓과 페어링을 얹어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따라서 3차 시험발사 뒤에는 우리 2단 로켓과 페어링을 시험할 방법이 없어진다.
1,2차 실패원인 규명도 제대로 안돼
3차 시험발사가 실패할지 성공할지는 하늘이나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공동개발이 무산돼 협력과 협동 작업이 사라지면서 원래 계획된 시험절차도 간소화된 탓으로 성공 확률이 크게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첫째는 1, 2차 발사 실패의 원인을 절차에 따라 규명하지 않고 추정적 결론을 내린 점이다. 1차 발사 실패 원인을 페어링 분리 고장 때문이라 발표했지만, 충분한 조사분석을 통해 규명된 원인은 아니었다. 페어링 고장 수리 여부는 2차 시험이 실패로 무산됨에 따라 확인되지 못한 채 3차 발사로 넘어와 있다.
2차 발사 실패는 77 킬로미터 상공까지 정상적으로 상승하다가 나로호 전체가 폭발한 것으로, 러시아 지상관제사가 문제를 발견하고 폭파명령을 올려보내 의도적으로 폭파시킨 게 아닌가 의심된다. 이런 추정이 옳다면, 텔리메트리 데이터를 수집한 러시아는 실패 원인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1, 2단계 로켓 분리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한다. 고장 원인을 분명히 밝히면 올바른 결함 제거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3차 시험발사로 판명될 수 밖에 없다. 앙가라는 수십 년 동안 사용해온 로켓을 포장만 바꾼 것이고, 한국의 2단 고체로켓과 페어링은 원점에서 개발한 것이므로 불확실성은 1,2단 분리 기능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둘째는 러시아 현지에서 두 나라 기술자들이 함께 나로호 전체 시스템을 갖추고 실시해야 할 종합시험이 공동개발 계약 파기로 인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양방의 팀워크가 빠진 시스템 개발은 있을 수 없다. 2단 로켓과 페어링이 1단과 결합되어 지상에서 충분한 종합시험을 거치지 못하고 발사 전 기능 점검으로 단순화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3차 발사 성공 또는 실패, 그뒤의 시나리오
그건 그렇고, 이번 3차 시험발사가 실패하면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나로호 공동개발 사업은 이번 시험발사로 종료되고, 나로호라는 이름은 영원히 잊혀질 가능성이 있고, 나로호 개발사업을 이끈 연구원들은 허탈감에 빠질 수 있다. 사업의 실패도 그렇지만, 국민을 오도했다는 지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만의 잘못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으나,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공무원, 정치인들은 과학기술자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러시아 로켓만 발사할수 있도록 설계된 나로도 발사장도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앙가라 규격에 맞추어진 발사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로도 발사장은 애초부터 발사장 입지 조건에 적합지 않았다. 남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깊숙히 위치한 탓으로, 발사회랑이 협소하여 주변 도서 해역과 인접국이 안전문제를 제기할수 있기 때문이다. 적도부근 공해상에 해상 플랫폼을 만들어 발사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나로호 사업의 종료는 한국형 발사체인 KSLV-2의 자력 개발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로호와 KSLV-2 의 중복 개발 논란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KSLV-2 개발 예산은 연간 소요액의 10분의1 수준인 444억 원에 불과하고 내년에는 800억원이라 한다.
이번 3차 발사가 성공하면 어떻게 되나?
러시아는 앙가라를 계속 한국에 팔려고 판촉을 벌일 것이다. 기술적 차원에서 보면, 항공우주연구원은 2단 고체로켓과 페어링을 시험하기 위해 1단 부스터를 사용할 필요가 있고, 한두 번 더 성공하면 정밀 탐사위성을 나로도에서 발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1조 원이 들어갔다는 나로도 발사장도 버리기 아깝다. 그러나 발사체와 발사시스템 보안을 이유로 러시아 기술자와 보안요원이 떼로 몰려와 발사때 마다 현장 감시를 고집하게 되면 우리 위성체 기밀을 유지하기 어렵다.
미일중 3국의 시선도 예민해질 것이다. 나로도 발사장 시설과 장비가 항우연에 기술 이전이 되지 않은 채 판매되어 설치된 것은 앞으로 한러 간의 난제로 남을 것이다.
명실상부한 우주개발 국가란
발사체 기술이 없으면 위성체를 올려서 우주정보 응용이나 하는 나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개발한 실용위성을 띄우려면 외국 발사체를 이용해야 하는데, 미국이 기술특허를 가진 핵심 부품 중 한 가지라도 수출입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위성을 외국으로 옮겨가기 어렵다. 나로호 한러 공동개발 계획과 나로 발사장 건설계획은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에서 계약 파기와 계약 변경으로 곤욕을 겪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사실을 은폐하며 발사 축제를 벌이다 실패하였다. 항공우주연구원의 역할이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다.
계약에 의하면 2차례 실패 원인이 한국이 개발한 2단이나 페어링에 있었다면 계약 잔금을 러시아에 지불하고 3차 발사 없이 사업은 종료되었을 것이다. 러시아가 앙가라에 문제가 있다고 시인한 적이 없으니 3차 발사용 알가라 제작비를 한국이 추가로 지불했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는 KSLV-2 개발을 성공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MTCR 협정은 기술 이전을 금지할 뿐 자체 능력으로 개발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기술력은 갖추었으므로 올바른 정책이 뒷받침되면 될 것이다. 2021년에 KSLV-2를 실용발사 하려면 최소 3조 원가량 소요될 것이다. 해마다 4천억 원을 써야 한다. 연구원을 사업청으로 바꾸고 기업체를 적극 참여시켜 2016년부터 시험발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로켓 추진시스템 기술은 수 톤의 위성체를 나르는 부스터부터, 최첨단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 같은 미세제어 로켓까지 있으나, 소프트웨어에 의한 제어 기술을 빼면 모두 교과서에 공개된 기술이다.
나로호 사업 같은 값비싼 실패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발사체 기술을 축적하여 우주개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제 기술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2021년으로 잡고 있는 KSLV-2 가 성공적으로 개발되면 우리나라가 2030년 쯤 우주개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로호 3차 시험발사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도 나로호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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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선종
통신위성우주산업연구회 고문, 전자통신연구원(ETRI) 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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